학교폭력 - 놀이치료
외동인 저의 아들은 아빠를 닮아 과묵하고, 저를 닮아 평화주의자인데, 초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같은 반 아이에게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했더랬어요.
괴롭히는 아이는 부모를 닮아 운동도 잘하고, 키도 또래보다 한뼘이나 컸었는데, 저의 아이만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반아이들을 모두 괴롭히고 있었어요. 어느 날 여자아이를 밀치는 걸 저의 아이가 말렸더니, 그 다음부터는 저의 아이를 집중적으로 괴롭히기 시작했어요.
뒷자리에 앉아서 수업시간 내내, 아이의 의자를 발로 차서 수업에 집중을 못하게 한다거나, 줄을 서는 일이 있으면 아이 앞에 새치기로 끼어들어 아이를 뒤로 밀어버린다거나, 길을 갈 때 발을 걸어 넘어뜨린다거나... 이루 말할 수 없는 자잘한 괴롭힘이 계속 되었어요.
1학년 담임선생님은 정년을 앞둔 할머니 선생님이셨는데, 저에게 "어른인 저도 말 안듣는 그 아이를 보면 심장이 두근거리는데, OO이는 오죽할까요. 그 아이 엄마에게 말해보았는데, 자기 아이는 아무 문제 없다고 하니, 답답할 노릇이에요." 하고 어쩔 줄 몰라하시더군요.
평소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안면이 있던 그 아이 엄마와 전화통화를 하게 되었는데, 아이 엄마는 자기 아이만 잘못한 게 아니라며, 저의 아이도 할 말 다하는 아이라면서, 두 사람 사이의 문제가 마치 쌍방폭행 같은 주장을 펼치더군요.
어느 날 퇴근을 하고 집에 오니, 당시 저의 아이를 돌봐주시던 친정 아빠가 아이가 낮잠을 자면서 잠꼬대로 "XX아, 하지마, 하지마..." 하고 말했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그날 학교에서 그 아이가 저의 아이 머리카락을 잡아채고 한참을 흔들고, 머리카락이 한움큼 뽑혔다고 하는 게 아니겠어요? 꿈에도 나올 만큼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니 당장 찾아가서 엎어버리고 싶더군요.
하지만 남의 아이를 훈계하는 것보다 내 아이에게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집중하는 것이 더 중요했어요.
저는 당시에 회사에서 프로젝트 팀장을 맡아서 한창 바쁠 때였는데, 아이를 이대발달센터에 데려가서 검사도 하고, 놀이치료를 병행했어요.
당시의 진단은 약간의 주의력결핍이 있다는 내용이었는데, 평소 자신의 관심분야에서는 천재적이고, 포토그래픽 메모리까지 있는 아이가, 어떤 때는 멍 때리는 상황이라 도대체 저 아이의 머릿속은 어떤지 너무나 궁금했는데, 진단이 약간의 주의력결핍(AD)라고 하니 무척이나 안도감이 들었어요. 원인을 모를 때는 불안하지만 이제 이유를 알았으니, 해결만 하면 되니까요. AD에 더해 지속적인 괴롭힘으로 인해 아이의 심리가 약간의 우울하다고 하더군요.
가장 충격적인 것은 가족을 그림으로 그리는 검사에서, 아이가 아빠와 손잡고 있는 그림만 그리고, 엄마를 안 그렸다는 사실이었어요. 진단 결과 아빠는 아이에게 절대적 신뢰를 주는 존재이고, 엄마상은 부재하다라고 하더군요.
당시에 아이 아빠는 일년에 절반은 해외 출장을 다니고 있었고, 저는 바빴지만 최선을 다해 아이를 돌보고 있었는데, 퇴근 후에도 일하고 있는 저에게 평소 아이가 자주 하는 말은, "엄마, 또 이메일 써?" 아니면, "엄마, 또 컨퍼런스콜 해?"였었어요.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존재하지만, 엄마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던 거죠. 함께하는 시간의 양보다 얼마나 인텐시브하게 보내는지가 중요한 거였죠.
오백 문항이 넘는 검사를 부모도 함께 받았는데, 부모는 다행이 별 문제 없는 평균적인 부모인 것으로 판명이 났어요. 하지만 검사를 하는 동안 저 스스로 깨달은 바가 있었는데, 제가 얼마나 자기중심적이고, 타협을 모르는 성격인지 YES, NO 답변을 반복해서 쓰면서 알게 되었어요. 참을성이 많고, 역치가 높은 아이는 진작에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 성격으로 변해 있었던 거죠. 바쁜 부모에게 무언가를 요구한다는 것이 몹시도 어려웠던 거예요.
생후 10개월부터 구립어린이집, 사립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까지 지속적인 출퇴근을 반복했던 아이는, 어린이집에서도 퇴근이 가장 늦는 축에 속했어요.
유치원은 2시쯤 끝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대구에 사시던 친정부모님이 집을 팔고 서울로 이사하셔서 저의 아이를 맡아주게 되신 거죠. 그러나 연로한 조부모님은 아이의 의식주는 케어했지만 정서적인 측면까지는 돌봐주지 못하셨던가 봐요.
일주일에 두 번 아이를 놀이치료에 데려가는 것도 부담이지만, 평소에도 아이와 시간을 밀도있게 보내는 것이 중요해서, 다니고 있던 회사에 사직 의사를 밝혔어요.
그랬더니, 감사하게도 회사에서는 몇 개월의 유예기간을 주시면서, 일주일에 월요일 하루만 출근하고, 나머지는 재택근무를 하면서 프로젝트를 인수인계하도록 편의를 봐주셨어요. 월요일은 회의하는 날이라, 출근해서 3개의 팀과 프로젝트 회의를 하고, 주중에는 개별로 메신저나 전화, 이메일을 통해서 커뮤니케이션했어요.
IT회사답게 업무 메신저, 파일서버, 클라우드, FTP 등의 인프라가 모두 갖춰져 있기도 했지만, 하루 300개가 넘는 팀원들의 업무 메일을 전량 모니터링하고, 유럽과 미국 고객과는 시차 때문에 퇴근 후에도 컨퍼런스 콜을 하기 일쑤였던 터라 재택으로 일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퇴사를 위한 유예기간 동안 제가 맡은 모든 업무의 매뉴얼을 짬짬이 작성하고,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를 모두 마무리했어요. 장장 13년 동안의 프로젝트 매니저로서의 삶이 끝나고, 새로운 육아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어요.
회사를 그만둔다고 말하자 아이는 한숨을 조용히 쉬면서 "이제 더 이상 엄마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겠다"라고 읊조리더군요. 그리고는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 리스트를 써서 냉장고 문에 붙이고, 일주일 내내 그 음식들을 차례로 만들어 달라고 하더군요.
1. 스파게티
2. 떡볶이
3. 피자
4. 치킨 .....
놀이치료를 시작하고 6개월 정도 지났을 때, 심리치료 선생님께서, 학교폭력 때문에 치료의 효과가 크게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치료를 해도 학교에만 가면 스트레스의 원인이 그대로 있으니, 상황이 계속 리셋되고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서울에서의 생활을 과감히 접고, 일산으로 이사를 갔어요. 지역의 선정은, 공부를 지나치게 강조하지 않고, 협업 등의 프로젝트 수업을 많이 하는 혁신학교인가와 경의중앙선을 타고 신촌에 있는 이대발달센터까지 대중교통으로 다닐 수 있는가.... 였어요. 덕분에 아이 아빠는 강남까지 출근하느라 하루 세 시간을 길에서 버려야 했어요.
아이는 2학년 2학기 중간에 전학을 했는데, 새 학교에서는 무난하게 잘 적응했어요.
이사하기 직전에 아파트 단지에서 괴롭히던 아이를 마주쳤는데, 그 아이가 옆을 스쳐지나가면서 눈 주위가 파르르 떨리더군요. 제가 눈으로 레이저를 쏘고 있었는데, 그 아이도 자신의 잘못을 알고 쫄아있었던 거였죠.
그후 동네에는 OO이가 XX이가 괴롭혀서 전학갔다는 소문이 났는데, 얼마 후에 XX이가 같은 반 아이의 얼굴을 손톱으로 긁어서 피를 보았고, 성형외과 치료까지 받게 되었다는 등, 5학년이 되어서는 그 아이의 엄마가 교육청에 민원을 넣어서 담임선생님이 스트레스로 사직서를 냈다는 등의 소식이 전해졌어요.
6학년 말에는 이혼을 한 그 아이 엄마가 재혼을 하면서 살림집을 옆동네로 얻는 바람에 간발의 차이로 다른 중학교로 배정되어서 전교생이 모두 안도했다는 웃지못할 소식도 듣게 되었어요. 저의 아이가 1년 동안 받았던 스트레스를 남아 있던 사람들은 6년 내내 받고 있었던 거죠.
일산으로 이사하고 놀이치료를 반 년 정도 더 다녔을 때, 더 이상 놀이치료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희소식을 듣게 되었어요.
놀이치료가 끝나고 몇 달 동안 드럼을 가르쳤어요. 무엇이라도 때려부수면 마음속의 화가 가라앉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이는 의외로 마음속에 화가 별로 없었는지 두들기는 것에 큰 흥미를 못 느끼더군요. 대신 이 아이는 항상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어요. 레고로 건축물을 만들거나, 클레이로 소품을 만들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졸라맨 같은 인간과 전차가 등장하는 전쟁만화는 대사는 없이 장면과 의성어만 가득하더군요. (힘이 약한 어린이가 밀리터리 덕후가 되어가는 과정은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포스팅하도록 해볼게요.)
2년의 전세 기간이 끝나고, 저는 다시 직장을 구해 여의도로 이사하게 되었어요.
새로 전학 간 학교에서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호출을 하셔서 반차를 내고 학교를 가보니, 복도 계단에 아이가 앉아 있더군요. 그래서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아이는 머뭇거리면서 "엄마, 그게... 내가 말이야... 신고를 했어. 학교 폭력..."이라고 말하더군요.
학교에서 정기적으로 하는 학교폭력 조사에 아이가 너무나 구체적으로 답을 하는 바람에 소위 가해자의 부모도, 피해자의 부모도 바로 소환된 상황이었어요.
얘기를 들어보니, 둘은 학기초부터 수업이 끝나고, PS4가 있는 저희 집에 와서 같이 놀았는데, 하루는 아이의 저금통을 따서 같이 간식을 사먹었다고 해요. 그 후 몇 차례 더 간식을 사먹자고 하는 요구가 있었고요.
어느 날은 체험학습을 가서, 그 아이가 OO이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했는데, 돈을 안 빌려준다고 하니, "인성 쓰레기"라고 말했다고 하네요. 그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물리적 폭력, 언어 폭력, 따돌림" 등의 카테고리로 분류되어 학교폭력이 아니라고 하기도 애매하더군요. 그 아이 엄마가 얘기를 다 듣고는 충격을 받아 눈물을 터트리는 바람에 졸지에 피해자인 줄 잠시 헷갈리기도 했어요.
현명한 담임 선생님께서 그 때가 5월 초였는데, 11월까지 두 아이는 눈도 마주치지 말고, 말도 섞지 말라는 조치를 취해 주셨어요. 어쩌다 같은 모둠이 되어도 떨어뜨려 놓아주겠다고 하셨어요. 그렇게 학년말까지 평화로운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죠.
초등학교 1학년 때는 학교에서 당하고 와서 한 마디도 말로 하지 못했던 아이가, 5학년이 되어서는 공식적인 문서로 문제를 제기하고,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게 된 것이 무척이나 안심이 되었어요. 어린이날 학교 행사에 갔더니 쉬는 시간에도 친구없이 혼자서 주로 책을 읽는 아이에게 선생님께서 다독상을 주셨더군요. 급우들에게 아이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해주시는 배려가 감사했어요.
중학교는 더욱 경쟁이 없는 곳으로 진학시켰는데, 가끔 학교에서 괴롭히는 사람이 없냐는 저의 물음에 아이는 "엄마, 이 덩치에 누가 날 괴롭히겠어?"하고 반문하더군요. 아이는 중3에 이미 키가 180이 넘게 자라 있었어요.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같이 자라서, 어느 날은 하교 길에 학교 앞에서 사고를 당한 1학년 후배를 도와 119를 부르고, 그 아이 부모님께도 연락을 드리고 수습을 하고 왔더군요. 그 일로 구청장님께 모범청소년 표창을 받게 되었어요.
고등학교에 필요한 서류를 제출하느라 중학교 생활기록부를 떼어 보니, "심성이 곱고, 솔선수범해서 남을 돕고, 모범적인 학교생활을 하고 있어서, 친구들이 모범생으로 추천한다"고 써 있더군요. 공부를 못해도 모범생일 수 있다는 사실이 신선하더군요.
며칠 전에 아이가 장래에 응급구조사가 되면 어떻냐고 저에게 물어와서, 피를 보는 게 싫지 않냐고 하니, 그게 뭐 어떠냐고 무심하게 대답합니다. 아마도 길에서 후배를 구조했던 기억이 아이에게 보람된 기억으로 남아있나 봅니다.
당장 내신성적을 걱정하는 아이에게, 공부도 안하면서 성적을 걱정하는 것은 도둑놈 심보라고, 너의 장래는 오늘이 내신성적이 아니라 3년 후 수능성적에서 갈릴 수 있으니, 오늘은 걱정말고 공부나 하라고 말해줍니다.
그렇게 오늘 아이가 시험보다가 배고플 수 있다며 자유시간 초코바를 한움큼 교복 주머니에 넣고, 중간고사를 보러 학교로 가더군요.
이런 저를 제 친구들은 "OO모사천지교"라고 불러줍니다. 아이에게 좋은 환경을 찾아주기 위해 네 번의 이사를 서슴치 않은 용감한 엄마라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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