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 캐스팅 이야기
고등학생인 저의 아이가 어느 날 하교길에 길거리 캐스팅을 당했어요.
어떤 여자분이 아이에게 이미지가 좋다면서 광고 모델을 할 생각이 없냐고 물어서 엄마 연락처를 알려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아이에게 '연예인이 하고 싶으면 너의 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그 분 명함을 받아올 일이지, 엄마 연락처를 왜 줬냐?'고 타박을 하니, 엄마가 평소에 하도 길거리 캐스팅 얘기를 많이 해서 엄마 소원인 거 같아서 그랬다고 하네요. ㅜㅜ
평소에 제가 아이에게 '언제 길거리 캐스팅을 당할지 모르니 잘 씻고 다니라'고 염불처럼 외기는 했어요. 그게 길거리 캐스팅을 당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잘 씻으라는 얘기였는데, 아이는 다르게 생각했나 봅니다. 너무 안 씻어서 까마귀가 '형님!'하겠다는 얘기도 같이 했는데 아이는 왜 그 얘기는 까먹었을까요?
길거리 캐스팅 얘기에 대한 저와 푸우 씨의 반응은 똑같았는데요, 사기이거나... 모델 연습생으로 이름을 올려놓고, 학원비를 받나보다... 였어요.^^
며칠 후 토요일에 매니저라는 여자분에게서 전화가 와서(아니 어떤 기획사가 토요일에 일을 하나요?), 강남역에 스튜디오가 있으니, 와서 카메라 테스팅을 하라고 하더군요. 주말에 학교를 안 가니 아이가 냉큼 갈 수 있도록 일부러 토요일에 전화하는 건가요? 오지라퍼인 저는 그 회사 직원들의 워라벨이 심히 걱정이 되더군요.
회사이름이 무엇인지 물어보니, 바로 말해주지 않고, 전화 끊고 홈페이지 링크를 보내주겠다고 하네요.
아이가 그 방면에 관심이 크게 없다고 하며 에둘러 거절하니, 그럼 애초에 모델할 생각도 없으면서 엄마 연락처는 왜 알려줬냐고 버럭하더군요.
같이 버럭할 수도 있었겠으나, 이것도 일종의 감정노동이겠구나 싶어서, 아이에게 의사를 한 번 더 물어본다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어요.
그분은 "오늘 중으로 답변 주세요." 하더군요.
성격도 급하셔라 ~ 진로를 어떻게 당일에 결정하나요?
다행이 그분이 홈페이지 주소 같은 회사에 대한 추가 정보를 알려주지 않아서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해프닝으로 지나가게 되었어요.
그래서 검색을 좀 해보니, 저희 아이와 같은 사례가 많더군요. 누구는 일산 웨스턴돔에서 길거리 캐스팅을 당해서 가보니, 연기와 모델 연습을 시켜준다며 교육비를 요구하거나 프로필 사진 촬영비 등 비용이 발생했고, 영어나 수학같은 학원 다니는 만큼의 비용이 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아이에게, 앞으로나 하이브나 SM, JYP 같은 곳이 아니면 명함도 받아오지 말라고 우스갯소리를 했어요. 이게 벌써 몇 개월 전 일입니다.
며칠 전에 아이가 철도기관사가 되고 싶다고 하길래... 각종 철도 사고로 자살율이 높은 직업인데 꼭 해야 하냐고 물으니, "스트레스가 많은 것은 알지만, 그것 때문에 하고싶은 일을 못하는 것보다는 하는 게 낫다"고 하네요.
아뿔사~
어릴 때부터 토마스와 친구들을 너무 많이 보여줬어요. 십 년도 넘게 지났는데도 여전히 철도기관사를 하고 싶다고 하다니요.
자고로 장래희망은 십 년은 묵혀야 하는 건가요? 정말 철도기관사가 될 건지 계속 지켜봐야 겠어요.